제목

인사추천권과 임명권의 충돌

방송통신위원회는 합의제 중앙행정기관 중 유일하게 대통령 소속이다. 다른 합의제 중앙행정기관 즉 공정거래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금융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모두 국무총리 소속인 것과 다른 점이다. 국무총리의 통할에서 벗어난 중앙행정기관의 설치는 정부조직 구성원리에 맞지 않다. 이렇게 소속이 특이하다 보니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5명 중 위원장을 포함한 2명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3명은 국회의 추천을 받아서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국회는 여당이 1명을, 야당이 2명을 추천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최종적으로 5명으로 구성된 방송통신위원회는 여야 3 2 구도가 되는 셈이다.

지난 330일 국회 본회의는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안형환 부위원장 후임으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최민희) 추천안을 가결하였으나, 대통령이 임명을 보류하고 있는 상태다. 국회의 방송통신위원 추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경우 대통령은 국회의 추천 의결 내용을 존중하여 임명을 하겠지만, 어떠한 경우에 대통령이 그 임명을 거부할 수 있는지가 법리상 문제 된다. 유사한 상황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국회가 선출하거나 대법원장이 지명한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를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그 예다. 대통령의 임명권은 형식적인 것이어서 대통령은 공직 적격성을 심사할 수는 없고 법률에 정해진 결격사유가 발견된 경우라든가 국회 의결 과정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임명 거부를 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주석 헌법재판소법) 게다가 대통령이 임명 거부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에 관한 절차 규정도 없다. 대변인을 통해 그냥 공표하면 되는 것인지, 국회나 대법원장에게 공식 공문을 보내 임명 거부의 취지 및 사유를 통지하여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후자가 명확한 절차일 것이다. 그 후 국회나 대법원장이 선출·지명을 철회하는 절차가 필요한지, 아니면 그냥 다시 선출·지명하는 절차를 밟으면 될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임명권자가 임명거부를 하고 최종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는 이상 국회나 대법원장이 다시 선출·지명하는 절차를 밟지 않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법률에 정해진 결격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고 법리적으로도 논란이 있는 경우다. 이번 최민희 추천안의 경우 방통위법 제10조 제1항 제2호에 의하면 방송·통신 관련 사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위원 임명 전 3년 이내에 종사하였던 사람은 방송통신위원이 될 수 없는데, 한국정보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으로 일한 것이 과연 여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되고 있다. 법문상 방송·통신 관련 사업에 종사하였다는 것은 대개는 방송·통신 사업체를 영위·경영하거나 그 사업체에 근로자로서 근무한 것을 말한다고 해석되지만, 입법취지상 그 사업체의 연합회에서 일한 것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만약 결격사유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가진 대통령이 그를 끝내 임명하지 않거나 임명을 보류하면 이를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와 같이 결격사유에 해당하는지 애매한 경우에는 임명거부를 하더라도 탄핵사유가 되거나 직무유지가 될 여지도 없기 때문이다. 국회가 대통령을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청구를 하여 해결하는 방안도 상정해볼 수 있겠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단을 법률 자체에서 마련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결국 정치로 풀어야 할 영역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핵심조건은 권한을 행사하는 각자의 자제이다. 국회 특히 다수당이 인사추천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고위공직자로서 편향되지 않고 균형감을 가지고 있는, 누가 보더라도 수긍할 만한 적임자를 추천함으로써 애당초 임명권과의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성숙한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 치열한 진영싸움과 정치투쟁이 득세하는 이 시대에는 그런 기대조차 할 수 없는가. 한국 민주주주의 위기 징후는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법률신문 2023년 4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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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황정근

등록일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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